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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산업

임실 치즈공장 초창기 모습 더보기
범당골역사 since 1966 더보기
임실치즈의 시작, 성가리에서... 더보기
[곽병찬의 향원익청] 왜 사느냐고 물으려거든… 전주교구 전동성당 보좌신부 시절 ‘지정환’이란 한국 이름을 얻었고, 1961년 7월 부안성당 주임신부가 되었다. 부안은 평야지대였지만, 가난한 농부들에게는 작대기 하나 꽂을 땅조차 없었다. 짐을 풀자마자 간척 공사에 뛰어들었다.“어떤 나무건 척박한 땅에선 뿌리를 내리기란 힘들다. 물과 거름이 있어야 뿌리도 내리고 열매도 맺을 수 있지.” “…” 때론 슬펐고, 때론 화가 나기도 했다. 부안에서도 그랬고, 임실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고통은 새로운 사역의 기회가 되었다. “제가 상을 받았습니다.” “누구 덕인지 아느냐?”2002년 호암상(사회봉사 부문) 시상식에서 지정환 신부는 수상 소감을 ‘하느님과의 대화’로 시작했다.“40여년간 죽을 고생을 한 제게 주는 상 아니겠습니까?” “왜 그리 어리석으.. 더보기
치즈로 사랑 빚은 벨기에 신부 앵커 전라북도 임실 하면 치즈로 유명하죠. 두메산골인 임실군이 가난을 극복하는데도 치즈가 큰 역할을 했는데요. 1960년대에 국내 최초로 치즈를 만들어 임실을 명품 치즈의 고향으로 만든 사람은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입니다. 송태엽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50여 년 전, 췌장절제 수술 후 요양차 부임한 산골 마을에서 벨기에 출신의 젊은 신부가 본 것은 가난이었습니다. 전쟁 후의 산은 헐벗어 있었고 농한기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지정환 / 전 임실 본당 주임 신부 : 그 산에 전부 다 풀, 풀, 풀, 풀 그러니까 풀 이용해서 살자. 그러면 염소 키우면 좋지 않겠는가.] 키우던 산양 두 마리를 청년들에게 분양하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팔고 남은 산양 젖으로 치즈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유럽에 가서.. 더보기
[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52. 지정환 신부의 시간 지정환 신부 삼월은 봄의 길목에서 새싹을 틔우고 꽃을 맞이하는 때이다. 희망을 상징하는 이 시기 봄처럼 우리 곁에 온 사람이 있다. 임실 치즈로 유명한 지정환 신부이다. 본명이 디디에 세스테벤스(Didier t‘Serstevens)인 그는 삼월 전주에서 ‘지정환’이란 한국이름을 얻으며 우리와 인연을 맺었다. 1931년 벨기에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였지만, 고등학교 때 극장에서 본 한국전쟁의 참혹한 영상이 운명처럼 그를 한국으로 이끌었다. 당시 가장 위험한 나라로 떠나는 그를 주변에서 말렸지만,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에 희망을 주고자 사제가 된 다음 해에 제노바에서 배를 타고 2달 만인 1959년 12월 전쟁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부산항에 도착했다. 1960년 3월 첫 발령을 .. 더보기
신태근, 그의 꿈은 농촌을 서로 함께 사는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선생을 만나기로 한 곳은 임실읍사무소 2층이었다. 읍민들을 위한 문화센터에서 선생은 한창 붓글씨를 쓰고 계셨다. 여러 서예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출중한 글씨 실력을 가진 선생은 서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듯했다. 정신집중과 건강에 좋은 취미이며 과거에 함께 농민운동을 했던 여러 어른들도 서예를 한다고 했다. 다정다감한 어조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내 선생의 표정은 담담했다. 일 년 넘게 뇌졸중으로 투병하고 있는 아내를 돌보는 중이라고 했다. 작년에 돌아가신 노금노 선생이나 역시 투병중인 이수금 선생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짙은 외로움이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선생은 오랜 세월 농민운동을 한 분답게 연로한 나이임에도 기억력이 또렷했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이야기했다. 선생이 살아온 내력도 .. 더보기